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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동네 책방] 숲으로 된 성벽 | 좀 더 친밀하고 사적인 서점

 저는 아이 둘을 낳고 처녀 적엔 없었던 것이 생겼습니다. 식탐과 몸무게, 땅땅한 팔다리. 덕분에 갈수록 봐주기 힘든 체형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생 최고 몸무게를 계속 갱신 중이에요. 그것만 해도 운동은 제게 꼭 필요하지만, 처녀적엔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체력이 아이들을 키우며 절실했어요. 그래서 살기 위해 틈틈이 요가나 필라테스를 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운동하기 힘들어진 틈에 뭘 할까 고민하던 중, 요조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달리기 예찬을 보고 저도 '삘'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제목과 달리 왜 달리기 이야기냐면, 요즘 동네를 달리면서 운동을 한다는 이점 말고도, 새롭게 발견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더불어 제 머릿속에 동네 지도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고, 그만큼 동네를 더 즐기게 되었어요. 탕수육이 맛있는 작은 중국집도 그 덕분에 발견하게 됐는데, 오늘은 달리기를 마치고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책방을 발견했습니다. 원래는 지난 달리기에서도 얼핏 본 곳이지만, 그때는 카페인가? 하고 지나쳤어요. 다만 유리창에 쓰여져 있는 글귀는 인상 깊었지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C.S. 루이스

 

 오늘 돌아가는 길에는 유리창 위의 간판까지 눈이 갔어요. 까만 간판에 '숲으로 된 성벽, 동네책방'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동네책방? 뭐 하는 곳이지? 독립출판사 서적들을 파는 곳인가? 책을 빌려주는 곳? 뭐 하는 곳인지 잘 모르니까 쉽게 발길이 가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돌아가기 못내 아쉬워서 그쪽으로 발길을 돌려 들어가 보았습니다.

 

입구에 책에서 발췌한 글귀가 손님을 맞이하네요

 

 외부는 예쁜 카페 느낌이었는데, 들어가 보니까 아담한 서점이었어요. 앉을 수 있는 자리 두세 군데와 더 안쪽의 세미나실을 제외하면 전부 책이더라고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그림책, 시집 코너 등 정성스레 진열된 책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누군가가 하나하나 골라서 책을 모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보통 서점에서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기가 힘든데, 이곳에는 내 흥미를 끄는 책들이 너무 많았어요. 사장님께 여쭤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직접 고른 책들을 진열해 판매하신다고 해요. 이런 게 동네책방이란 것인가? 다른 큰 도시에는 이런 스타일의 서점들이 이미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서점을 처음 접한 저한테는 너무 흥미롭고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다양한 에세이들과 문학

 

제목들이 눈길을 끈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나의 이목을 끄는 역사책들

 

쓰는 것과 관련된 책들이 쪼로록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발췌한 메모가 책 앞에 붙어 있기도 하고, 동네사람이 직접 추천한 '내 인생의 책 10권'을 진열해 두기도 하고, 무슨 책인지 모르고 책을 구매하는 '숨은 책 찾기'라는 코너가 있기도 해요. 전체 책에 대비해서 그림책도 제법 많이 있어요. 얼마 전에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의 책들이 따로 전시된 부분도 있었어요.

 

 

 

 책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모임도 있어요. 6월 24일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로 모임이 열린다는 공지가 있네요. 코로나 사태가 연상되는 도서 선정이군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카오톡에서 채널 추가를 하면 소식을 받을 수 있고 문의도 가능해요. 지난 소식들을 살펴보니 작가와 만남의 시간도 있더라고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 색다른 장소에서 영감을 받고 싶으신 분, 동네책방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신 분, 혼자만의 차분한 시간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었어요. 저도 가족과 곧 다시 한번 들르고 싶은 곳이었어요.

 


 

경남 김해시 덕정로204번길 6 1층

매일 10:00 ~ 21:00 매주 화요일 휴무

 


 

책방의 이름은 사장님의 사모님께서 좋아하는 시에서 따왔다고 해요. 실내에 이 시가 프린트된 스크린 롤이 설치돼 있었어요.

 

 

 

숲으로 된 성벽

 

저녁 노을이 지면

신(神)들의 상점(商店)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성(城)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사원(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성(城)

 

어느 골동품 상인(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

 

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城)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